관람후기 송고 기타

국제전위예술가들이 펼친 평화의 한 연구

상시 2018. 10. 23. 22:29

국제전위예술가들이 펼친 평화의 한 연구

 

나는 지방색을 좋아한다. 그 지역만의 특별한 역사와 음식 맛과 토박이 사투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될 수 있고 정치인들의 편익을 위해 갈라놓은 지방색이 아니라면 향토색과 고유성을 잘 간직한 지방색은 아름다운 무지개와 다름 아닐 것이다.

전주는 꾸미고 만들어놓은한옥마을 보다 훨씬 더 많은 유 무형의 문화 자산이 풍부한 지방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것만이 아닌 지금 현재도 예향에서 만나는 사람들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개별성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퍼포먼스도 비로소 소통이 되며 꽃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행위예술제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아서 개최가 시작된 2000년에도 나는 전주에 살 때라 자연스레 퍼포먼스를 보며 전국에서 모여든 작가들과 잠을 자며 막걸리를 마셨다.

상대적으로 중앙보다 남쪽 예향들이 전통 예술을 잘 간직해 오며 향유하고 있던 터라 한국화를 하는 나는 전주가 입에 맞았고 첫 전시도 하며 이곳이 익숙하다보니 동문사거리를 걷다 보면 반드시 술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간밤의 전투에서 걸러진 경미한 내상자들은 해장을 이유삼아 다시 母酒를 시작으로 뫼비우스의 띠에 발을 올린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공자의 朝聞道夕死可矣(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에 실패했다 하여 朝聞酒夕死可矣(해장술이 달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를 한다는 게 당시 나의 답이었다.

잘 선전되어 있는 전주의 전통예술이나 맛과 풍류는 한옥마을처럼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며칠은 묵으며 토박이들의 몸에 익은 북과 함께 단가라도 듣다가 그들의 단골 막걸리 집을 순례하고 다음날 콩나물 국밥을 나눠 먹어야 그나마 전주를 조금 구경한 것이다.

 

전주 얘기가 다소 길어졌지만 그 전주에서 행위예술제를 한다는 것을 조금은 강조하고 싶은 것이고 그것도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지방에서 2000년부터 9년간을 개최 해 왔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전주에 드나들던 초기에 오거리 전통찻집 다문에서 당시 무명 시인 박남준을 만나러 갔을 때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심홍재였다. 30여 년 전 동숭동 나우 갤러리에서 그의 행위 작업을 처음 봤고 그는 전주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 좋은 미소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심홍재 감독은 역시 전주에 사는 임택준과 함께 퍼포먼스 2세대로 우뚝 선 범상치 않은 중진이며 어느덧 또 하나의 전통과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주행위예술제가 작년부터 국제의 제목을 덧붙여 다시 부활되었다고 하니 심 감독의 행위예술제에 대한 의지와 뚝심은 본 행사 재개의 단초가 된 유라시아 횡단 아트로드를 결정하고 추진할 때 이미 알아봤다.

이런 행사가 나로서도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렇잖아도 유배처럼 멀리 떨어진 북서쪽 끝, 석모도에 살면서 전주에 올 일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번 남행은 그 속에서 놀던 때를 그리던 귀향길 같은 즐거운 명분을 준다.

국제 문화 행사는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익히고 우리 또한 그들과의 차이에 대한 관용을 배우고 과잉 정체성을 완화할 수 있어서 혹시 모를 지방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도 역시 청연루에서 그 뜨거운(뜨거운) 시작을 알렸다.

날씨도 퍼포먼스를 읽었는지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 햇빛이 가히 하드코어적이다.

청연루는 전주천을 이은 다리 위에 전주 한옥마을 확장 연결 부속 건물로도 적절했고 특히 말복이 남았어도 바람이 설렁하다. 그래서 염천의 날씨를 피해 들어와 장기를 두던 노인들과 함께 전주국제행위예술제를 시작하였다.

 

흔히 상대와 언쟁을 할 때 중언부언하다 답답해지면 비속어지만 급기야 톡 까놓고 말해라는 직설을 토해 내는데 솔까말이라는 줄임말을 쓰는 요즘 애들도 이때의 심정은 같은 모양이다. 권태와 같은 지루한 반복이나 소통의 한계를 느낄 때 본질을 까뒤집어 보여 주는 작업이 퍼포먼스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주로 단도직입적이고 거두절미가 많고 직설과 직관이 많은 점을 든 것이다.

 

평화통일 메시지를 전했던 유라시아 횡단 아트로드를 다녀온 후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의 주제에도 평화가 공통으로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평화가 절실했고 그 이상 무엇이 우선일 수 있겠는가. 블라디보스톡부터 유라시아 땅끝까지 그가 일관되게 외쳤던 “Peace be with all” 만은 지금도 열병처럼 고질병 같은 이명처럼 내 귀에 남아 있다.

 

참여 작가들도 오직 평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특히 외국 참여 작가들은 하나같이 남북문제를 다뤘다. 남북문제는 당면한 우리보다 더 심각해 보일 정도여서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심층 토론은 나의 영어가 짧아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대부분의 작가들도 오직 평화만을 만들어 오기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밑그림,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기 위한 조건과 근거들에 배분을 더 하며 실연을 준비 한 것 같았다.

올해 같은 특별한 여름 날씨 탓도 섞어 보고 또 나의 이해가 짧아 작가들의 정밀한 행위 전달 보다 전주국제행위미술제의 지역적 배경과 전반적 분위기 전달에 치중했음을 혜량하시기 바란다.

다음 날 출국이 있어 공식 행사만 끝내고 뒤풀이 참석을 놓친 일은 분하다.

 

[Collin, Lafin,Lee (Team)]

[성백]

첫 날 첫 무대는 이 팀이 시작을 했는데 핀란드 미국 대만의 다국적 작가 동원이나 장비 규모 면에서도 버라이어티하다.

작가들의 준비도 길어서 그 뜨거운 날씨를 온 몸에 담아 열기를 더했다. 모바일 타악처럼 보이는 토속 무구(巫具)와 대형 두루마리 흰 천이 설치되고 직접 타악과 함께 소리를 낸 다국적 음악이 섞이어 춤꾼과 하나로 모인 해원 굿이기도 한, 오직 평화를 위한 제의식은 절절하다.

이어 성백은 평화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역사를 따라 가듯 눈부신 흰 천을 밟으며 검은 얼룩을 남기고 화분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낸다. 필경 오염되기 쉬운 순수나 깨지기 쉬운 평화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성백은 물, , 바람, , 나무를 형상하는 인간이 결국 그들에 의해 자연이 파괴 되는 현실과 평화를 지키는 것과 깨는 것도 우리라는 것을 경고하듯 강조했다.

 

 

[조은성]

그녀는 흡사 혜원(蕙園)이 그렸던 조선 풍속화 속 여인처럼 다소곳이 청연루에 앉아 대형 세계 지도책을 펼쳐 들었다. 한참을 골똘히 연구하다가 관객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지도를 넘겨가며 같이 보더니 그 다음에는 지도책에서 작은 글씨를 오려 하나씩 나눠 주는 것이었다. 나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어서 할 수 없이 글씨를 받은 사람에게 찾아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을 받았는가. 그저 작은 글씨 하나, 그 사람은 알파벳 ‘E’를 받았다고 나에게 보였다.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작가는 미궁으로 끝내거나 숙제를 내는 타입은 아닌 듯 했다. 지금까지 받은 글자를 한 사람 씩 읽으라고 했다. C,P.E.A.E? 이것으로는 알 길이 없다. 그녀가 해독해 준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PEACE’~ 그녀는 전 세계에서 평화를 한 땀 한 땀 지어 나누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조은성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평화는 우리가 찾고 구하는 것인가 기다리면 다가오는 것인가?” 나의 소설보다 강력한 실존적 평화를 역설한 것이었다.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윤진섭]<600초의 사건(For 600 seconds)>

작가와 관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물론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시간 까지도 진행자와 동일한 주체적 관심으로 함께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으로 보인다. 작은 메모지를 나눠 주고 평화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을 적어 내도록 했다. 적어낸 메모지를 걷어 읽어주며 평화에 대한 다양한 소견을 같이 들어 보도록 하는 어쩌면 단순한 과정인 듯 해서 특별한 논평이 필요해 보이진 않는다. 내가 일부를 들은 바로는 대체로 평화를 명사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절박해 보이거나 목말라 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평화지대인가. 국제 행사에 참여한 다국적 작가들의 답도 궁금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서에 의해 다음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형식의 매력이다. 놀랍거나 되새겨 볼 만한 풍자가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심홍재(진도북춤)

심홍재는 기획과 운영에 오랜 이력이 쌓였지만 그렇다고 작품 활동에 등한시 한 적이 없다.

대개의 행위예술가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작품 활동을 하지만 이 작가도 수많은 실험작들과 퍼포먼스를 병행해 온 현역 전사다. 특히 그가 오랫동안 화두처럼 놓지 않는 베개시리즈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번에는 정통 진도 북춤과 함께 시작 되었다. 그가 세상에 깔아 놓은 판에 관객들의 참여로 열어젖힌 꽃잎마다 12지신을 일필휘지로 적은 중앙에는 오직 평화가 모든 이들의 열망처럼 피어 있었다. 심홍재의 작업은 퍼포먼스 특유의 함축과 일축에도 회화적 구도와 색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회화로 의식의 문(doors)을 열었기 때문일까.

 

현지예술단

퍼포먼스에는 정해진 영역이 없다. 지역 예술을 품으며 오롯이 살아낸 소리는 아름답다.

행위예술제 두 번째 날은 현지 예술단이 열어 주었다.

굿패의 장단은 푸지며 남도민요 뿐 아니라 경기 민요를 불러 주는 여유는 비교해가며 맛보는 한상 차림처럼 풍요롭다.

 

Toua Toua

멀리 핀란드에서 참가한 퍼포머 Toua Toua의 차례가 되었다.

청연루 대청마루 대들보에 청색 줄을 걸어 놓고 한 줄 한 줄 한 발 한 발 한 손 한 손을 감고 있었다. 내 감정으로 적는다면 보이지 않는 줄에 엮이고 있었다. 청색 줄은 꽤 오랜 시간 작가를 매달고 있었다. 한 줄 한 줄의 의미와 무작위로 변주되는 몸의 각도를 해석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 대상은 자신이 매달려 있는 줄처럼 얽히고설키고 꼬이고 꼬인 남북문제의 실상을 형상화 한 것 같고 내친김에 해결까지 고민 중인 것 같았다. 또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녀의 눈빛은 예상보다 심각하고 슬퍼서 자연스런 시선 안배를 하다 작가의 눈에 얼핏 잡힌 나는 콧등이 조금 시큰해지다가 알 수 없는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 했다. 작가의 정리도 인상 깊다. 자신의 사지를 묶으며 옥죄었던 결박을 풀어 정갈하게 모셔 놓고 염원을 모아 불자보다 더 견고한 자세로 큰 절을 올린다. 결국은 그녀에게도 우리에게도 안전한 평화는 쉽게 풀리지 않는 화두가 분명했다.

 

임택준

그는 청연루 마루에 편안히 앉아 천진하게 장난감을 꺼내놓고 소꿉놀이를 하려는 것 같았다.

흑 백 적 황의 원색 실타래와 거북이 장난감 뮤직박스, 풋사과 등을 작은 가방에서 꺼내 놓는다. 그것만 가지고도 며칠은 놀 수 있을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노란 줄로 구성한 자신의 공간에 점점 이상 기류가 흐른다. 천장의 구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자연스레 삶은 낮아진다. 급기야 방호 마스크나 붉은 복면이 씌워진 자연인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포복을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범죄인이 되어 목표로한 곳에 가지만 이미 파괴된 자신을 알지 못한다. 결국 끊임없이 희망을 접어 날리지만 의미 없는 반복의 학습은 반사회적 고립을 만든다.

붉은 복면의 전사 코스프레가 되었지만 정작 테러를 당하는 쪽은 본래 자신을 내 몬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집안에 뒹구는 몇 가지 사물 스케치로 자신이 낸 제목 <GAP/사이>의 싹수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음을 재건 해 보여 준다.

 

문재선

작품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소요되는 간단치 않은 장비도 직접 제작해 준비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순서다. 이번에도 하루아침에 변해 버린 카프카의 <변신> 같은 등장으로 증강현실을 보듯 청연루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의 변종은 성공적이어서 노곤해진 여름 오후의 관객들을 긴장시키며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유사한 습성으로는 걸어갈 때는 물론 기둥에 매달릴 때도, 엎드려 조아릴 때도 상습적이고 습관처럼 손을 비비는 행태로 봐서는 흔한 곤충을 많이 닮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나의 눈에 보이는 이런 표피적 호기심에 목적을 두었을 리 없다.

다만 한반도의 근대사를 살아 청연루에 앉은 촌로에게 무릎을 꺾어 예를 올리고 반대쪽 지구에서도 서식하는 핀란드 생 퍼포머에게 합장 인사를 하는 것에서 그가 낸 제목 <애도를 표합니다>중의 한 실연 단서를 추측해 볼 뿐이다.

 

S/P38

지구의 한 켠 청연루 앞 길에 커다란 종이를 펼치고, 준비한 붉은 물감으로 천천히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완성된 글씨는 장엄했다. UNITE KOREA, 역시 한반도 문제다. 하나 된 한국을 간절히 염원한 것이다. 이어 종이를 눌러 둔 보도블록 중에서 글씨가 쓰인 블록 2개를 근대 중국 목판화 속 노동자처럼 커다란 오함마로 하나 씩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 두 블록은 남한과 북한의 단절을 만든 38선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의 유추가 필요없는 간결한 행위지만 남은 과제는 무겁다.

 

유지환

유지환의 등장은 게릴라성 국지적 호우 같았다. 뜨거운 여름날을 식히는 시원한 소나기 같았다는 뜻이 아니라 머리숱과 수염이 듬성듬성한 괴한이 치마를 입고 무엇인가를 써놓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 난해한 팩트를 과연 보지 않고 믿어 줄지가 걱정이다. 게다가 부산한 행위 중 깡똥한 치마 속엔 헐렁한 트렁크형 속곡이 간헐적으로 스치는데 느낌은 마무래도 음산하다. 기왕에 써놓은 글이나 살펴보자.

아스팔트에 면도 거품을 짜고 손으로 빚어 완성한 대형 글씨는 다름 아닌 PEACE였다. PEACE의 운명은 그러나 지워져가는 PEACE. PEACE에 찬물을 껴 얹고 나니 물에 젖은 PEACE는 물결 따라 분해된다. 바림이 좋은 물감처럼 아름답게 흩어지는 PEACE를 바라본다. 회화적 테러를 당한 PEACE의 후기는 복잡한데 작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반복해서 각인되어야 할 개념지움으로 강조 한다라고 력설한다.

역시 문화 게릴라다.

 

김석환

마지막 순서로는 역시 이 작가가 제격이다.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 중 보기 드물게 많은 행사에서 작업을 하지만 모든 준비가 철저해 음악이나 춤이 필요하면 직접 관련 전문인을 모셔 공동 출연을 시켜 이른바 융복합의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 한다. 다양한 재주와 끼를 갖춘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며 막걸리부터 권하는 그가 정말 즐거워 보인다.

그래서 작가의 다양한 소품들 중 장총에 방아쇠를 당기는 폭죽 소리, 공명 상자를 이용한 자극적인 전동대패의 굉음이나 전투기 소리와 총구로 쓰는 붓질조차 나는 폭력을 전개해 나가는 징후로 알았지만 작가는 총성이 평화의 축포가 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비행이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뿔싸, 긍정적 사고의 전환이란 이렇게 극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긍정 시키며 원혼을 달래는 춤을 추고 제를 올리는 한바탕 진혼굿은 성대하고 장엄하게 끝이 났다.

 

아울러 2018전주국제행위예술제도 평화가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하며 막을 내린다.

The show must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