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로움엔 유효 기간이 있어 보인다.
1909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유학생으로 입학해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춘곡 고희동의 소회다.
그저 시대적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궁중 내의 프랑스어 통역과 문서 번역도 하고 동양화의 당대 대가로 알려진 조석진 안중식 문하로 화가의 길에 입문했던 그가 일본 유학으로 양화를 배우고 1920년대 중반부터 다시 동양화로 전환하여 전통적인 남화(南畵) 산수화법에 서양화의 색채나 명암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회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 고사 되어가는 동양화의 대가급 작가 일부가 서양화로 전환하여 캔버스에 유화로 떡칠을 하는 양상 하고는 한결 다르지만.
2019.3.25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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