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글

박달나무에게(종이 편지를 위한)

상시 2011. 5. 12. 19:56

금세기에 넷맹이 살아있어서 결국 낮선(?) 편지를 쓰는구나
조만간 너도 이 화살보다 빠르고 빛보다 빠른 2진법의 디지털 세계로 어서 오너라
e 기계와의 악수가 조금은 어지럽고 속이 뵈질 않아 스폰지를 씹듯 글 읽는맛도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노무 세상 알아둬야할 것도, 모르면 손해볼 것도, 욕심을 채울 거리도 많아
한 번 사귄 이 기계를 편리함으로 보니 버릴수가 없구나
기계편지라면 길어도 한 달 내에는 두드릴 것이 손가락으로 눌러 쓰는 이 답장은 벌써 반년이 되어 가느냐?
페일언 하고
반년 전 내용이 됏지만 두(!)아들이나 낳아 큰아이는 벌써 아빠의 말을 알아듣는다니 대견하고 신기하구나
세상 아빠들의 마음을 내 어찌 헤아리랴만 아이만한 비중과 구체적인 행복도 없는 듯 보이더라
행복하게 키우거라
거기도 산중이긴하나 남쪽이라 여기보다 봄도 이르고 초록이 깊어 가겠구나
네가 내게 자랑하던 집 앞의 소나무도 허리를 굵혀 그늘도 넓어졌겠구나
여긴 꽃 다녀간 지 그다지 오래지 않고 남은 꽃잎은 그나마 장대같은 봄비가 내려 서둘러 씻기웠다
모든 것이 점점 빠르게 변하여 이상한 일이 많아지고 낮선 세상을 낙도에서도 보게 되는구나

세상을 숨기고 세상에서 숨으려해도 산 중이라 적절한 것은 아니니 늘 하늘 아래 건강하여라

'檀檀' 질긴 의지가 엿보이는 좋은 이름이구나 박달나무야

새로 시작한 호스피스 일과 함께 자꾸 '무엇'을 묻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구나

다만 앞으로 익숙하며 평범하여 묻지 않으면(안 묻다보면) 묻히고 일과 함께 새롭게 얻었던 화두가

묻히고 그리되면 이력만 얻을뿐 일의 근력과 탄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일전엔 전주를 경유한 남행을 했었지만 정교하지 않은 만행이었기에 경황도 없어 안부를 묻지

못했구나 가족들이 뜰앞에 소나무처럼 늘 푸르고 건강하길 빈다

석모도에서 오월에-

   *이면지 사용을 이해해라